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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의 미생, 윤태호의 살과 피(2)
신인들과 동등하게 어깨싸움 할 때가 가장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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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호의 '이끼' 보러가기 ☜ ○● 윤태호의 '미생' 보러가기 ☜ ○● 윤태호의 '내부자들' 보러가기 ☜ ○● 윤태호의 미생, 10년의 준비, 인터뷰1편 보러가기 ☜ 이어지는 말에서 현재 연재중인 미생의 모습과 향후 나올 미생의 모습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본만화 시마과장에서 디테일에 있어 인상적으로 다가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디테일, 실무에 관련한 디테일도 그렇다. 저의 디테일은 낭만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리얼리티와 낭만, 이게 전해졌을 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을 때, 독자들이 이게 우리의 사는 모습이야 라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저런 일이 가능해?라는 댓글이 있어도, 누군가 저런 일 있었는데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댓글이 달리면 되는 것이다." - 어느 만화가의 인터뷰에 만화가 인생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는데, 단지 마감이 너무 싫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화가로서 힘든 점이라면? "자기 직업을 갖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한다는 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항상 힘들다. 게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하려 한다. 그들에게 대체가 안되려면 정말 잘해야 한다. 나이와 경력이 있는 만큼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만만치 않다. 작품의 매 회 마감은 굉장히 힘들지만 젊은 신인작가들과 동등하게 어깨싸움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쾌감이 있다. 제 스스로 제 지면을 지켜냈을 때 행복하다. "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는 왜 이러지?, 왜 이럴까? 하며 거울 앞에서 자존감을 한 없이 비하했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 양보없는 부분이 하나씩 있다. 나같은 경우는 그림이다. 이게 무너지면 저란 존재가 모래처럼 사라질 것 같다." - 윤태호의 만화를 보면 누구나 '작품'이란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만화또한 예술이며 우리가 문학이나 미술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듯 만화또한 그렇다. 윤태호의 작품, 그러니까 펜이든 붓이든 혹은 연필이든 무엇으로 그렸든, 혹은 그것이 완성품이건 미완성품이건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었나? "같이 전시하자 라는 적은 많았지만 직접 작업물을 사자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림 파일이 아니라 종이에 한 것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이해될만큼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이 너무 힘들게 시작이 되고, 연재한 작품들은 찰나에 끝나며 끝과 시작의 텀이 너무 길어 불필요한 아르바이트가 많았다. 그런 즐거운 일은 상상하기도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그리고 절대 그런 생각은 안했고, 사고자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음. 영화제작분들께는 선물로 주는 그런 그림을 그려 준 적이 있다. 미국의 팝아트는 예술의 권위를 희롱하는 형식으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만화의 형식을 빌리기도 했지만 복제가 가능한 그런 시대의 지점을 표현한다. 저로선 "만화가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하는 입장이다. 뭐, 아니어도 좋다. 마치 내 만화에 '만화지만 좋네요'라는 댓글이 달린 것처럼 말이다.""말하자면 조치훈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처럼 (그래봤자 만화, 그래도 만화)... 언젠가 미생에서도 조치훈의 말이 나올 것이다. " 손종수 상무의 리액션이 적절하게 터진다. "그것은 조치훈이니까 할 수 있는 말, 지금은 윤태호니까 할 수 있는 말" 바둑과 만화 바둑과 만화, 바둑과 만화가 가진 사회적인 가치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가령 만화는 '극과 극'의 대접을 받기도 한다. 만화산업으로서 엄청나게 띄우다가도 어느 순간 청소년에게 해가 된다는 식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윤태호의 시선을 보자. "만화와 바둑은 다른 점이 있다. 바둑에는 '쓰레기의 영역 '은 거의 없잖나. 그러나 영화,만화,소설 등 이런 분야는 오로지 돈만을 위한 탐욕적인 존재가 있다. 바둑에는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태생적인 부분이 있다. 공식 바둑에 존재하는 형식미는 대단히 절차적이다. 바둑엔 기보가 있다. 그 기보가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확인,탐구,업데이트 되는 과정이 있다. 굉장히 합리적인 절차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절차를 목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다. 어린아이들에게 수순의 의미와 근거를 알려준다. 이렇게 왜 그랬는지를 묻고 논리를 캐묻는 분야가 많지 않다. 그래서 '바둑을 공부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엇나가기가 매우 힘들것이다'고 느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러리라고 본다. " 일정 수준이 되면 자기 바둑을 복기하잖나. 그건 실패의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다, 매순간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보같은 자기의 순간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바둑은 장구한 기간동안 지속되어 왔다. 한국만화는 근대화 이후 30년의 역사기 때문에 많이 다르다." 윤태호의 피와 살 윤태호의 스승은 만화가 허영만과 조운학 두 사람이다. 허영만 화실에 먼저 있었고 그 다음 조운학 화실에서 문하생으로 있었다. 윤태호는 조운학 작가가 아가페를 연재 할 때 허영만을 떠나 조운학 화실에 들어갔다. 허영만 화실에서 배운 것과 조운학 화실에서 배운 것은 서로 다르지만 또한 윤태호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마치 바둑황제 조훈현이 일본의 세고이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지만, 실전스승 '괴물 슈코'를 둔 것과 비슷하다. - 허영만 문하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허영만 문하를 떠난 것은 너무 바빠서 혼자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다. 당시 허영만 화실은 6개 매체에 연재를 했는데 문하생들이 잠을 못 잘 정도로 바빴다. 문하생으로서 칭찬받는 것도 좋았지만, 전 25살에 데뷔를 하고 싶었다. 연습자체를 못 하겠어서 조운학 화실로 옮겼다. 전 허영만, 조운학 둘 다 이야기를 하는데 허영만 선생이 더 유명하니까 언론에서 조운학 선생을 빼고'허영만' 선생만 소개한 경우가 많아 그렇다. 조운학 화실에서 2년 반 정도 있었다. 허영만 화실에선 데생을 허영만 선생이 직접했기에 배울 기회가 없었다. 조운학 화실에서 20대의 저에게 데생할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32~3살의 문하생에게 주어지던 기회였다. 조운학 선생이 선배들의 온갖 반대를 무릅썼다. 조 선생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태호 데생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라" 라고 하며 제게 기회를 주셨다.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은 없었다. 선생의 뜻이 확고하니까." "그래서 전 이렇게 말한다. 내 피와 테마를 만든 것은 허영만이며 근육(살)을 만든 것은 조운학이다." "사람들이 저보고 조운학 화실에 더 오래 있었으니까 그 영향이 더 큰 것 아니냐고도 하지만 허영만 만화만 보고 허영만 처럼 되고 싶어서 만화가가 됐다. 설령 문하생이 못되었어도 그는 내 스승이다.조운학이 실전을 가르친 사범님이라면 허영만은 무림 일대 종파의 당주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허 선생님이 정말 대단한 것이, 88년도에도 나 같은 문하생과도 '경쟁'을 했다. 문하생들이 가진 색다른 책이 있으면 일본까지 가서라도 똑같은 책을 샀다. 문하생 누군가가 폭파씬의 연기를 정말 잘 그린다 싶으면 그 문하생을 위해 그런 씬이 나오게끔 데생을 했다. 문하생과 함께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 했다. " "그리고 문하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항상 칭찬했다. 가령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태호 책 읽는 모습이 너무 좋다.' 그러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동기 부여가 된다. 어떤 책을 읽는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도 허영만 선생이 물어보고 제자들은 신나서 이야기해주는 풍토가 있었다. 저도 선생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신문기사도 더 읽고 문학도 더 읽고 그랬다. 그러나 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우리가 결국엔 활용당하는 거야 라는 농담도 문하생들끼린 했다. 하하하. 그땐 다들 무지했던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허영만같은 선생님은 정말 드물었다. " - 요즘도 도제식의 문하생 제도가 있나?"세상은 문명화됐다. 지금은 보통의 화실문화를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다 알 수 있다.전에는 문하생이 아니면 도저히 한편의 만화가 어떻게 나오는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일본 만화가들의 작업영상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혼자서 작업하는 게 가능한 시대다. 거기에 전공(만화)을 했으면 배운 것도 많다. 학교에서 가르치려면 선생이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니 힘들다, 하하하(세종대에 강의를 나간다)" - 윤태호 화실의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미생하기 전에 4년 동안 문하생들에게 계속 월급을 줬다.그러다보니 빚이 생겼다. 으하하하" - 제1회 응씨배 결승5국은 145수에 끝났다. 그 기보 수순에 따라 한 회씩 연재를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145회로 미생은 끝나는 것인가? "90회면 단행본 5권분량이 된다. 그러나 145수는 어쩔 수 없이 가야할 것 같다. 와이프의 목표는 300수를 넘기는 것이다." " 만화를 보면 '미생'의 의미는 처음에는 취직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질 거다. 그러나 살아간다는게 미생인 거다. 재벌회장이 왜그리 탐욕을 부리는 건지, 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살아 있다는 게 역설적으로 미생이다." 여기까지의 말씀만으로도 그는 인생의 고수, 바둑의 고수일 것만 같다. 기력을 묻는 질문에 "7급까지는 핥아보고 내려왔다"는 유머가 돌아온다. 바둑에 관한 편견이 처음에 미생의 흥행을 방해(?)했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처음에 미생이 '바둑만화'라고 광고가 크게 나갔다. 그러자 여성, 어린아이, 젊은이들이 처음부터 아예 만화를 안봤다.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보는 사람이 늘었다. 윤태호 작가는 바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거 - '바둑이란 어려운 거'. 그에게는 언제나 현장의 조언을 해주는 취재원들이 많다. 미생을 위한 취재 때 그렇게 만나고 싶었지만 못만났던 수능 준비하는 연구생 출신들도 메일을 주고 받고 샐러리맨 2명(종합상사맨) 조언도 역시 같이 듣고 있다. 최근엔 강남역에서 종합상사맨들과 6시간 미팅을 갖고 새벽 2시까지 저녁도 먹고 술도 조금 하고 했다. 집에 오는 택시에서 윤태호는 만화에 걸린 댓글을 봤다. 입단을 하지 못해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다른 어떤 길을 걸어가는 연구생 출신의 것이었다. 내용은 미생을 보며 느낀 것, "바둑외의 다른 길을 택한 그것이 틀린 길은 아닌 것 같아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윤태호는 그 댓글을 보고 택시안에서 펑펑 울었다. "연구생들의 이야기를 이미 들었으니까. 그렇게 어마어마한 패배감을 느끼고, 저도 그런 정서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두렵고, 나도 자식이 있으니까....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 바둑이, 그리고 당신의 체험이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축구선수라면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끝난 그런 거에 가깝다. 정말 짠해서. 울 수 밖에 없었다." 미생은 긍정적인 작품이지만 윤태호가 가진 마이너의 정서는 그의 말마따나 "버릴 수 있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고, 각인이 되어 있다". 독자들의 댓글도 이전의 작품들과는 좀 다르다. 주인공 장그래의 웃는 모습에 꽤 민감하게 반응 을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한 반응도 그렇다. - "귀여워, 그런데 웃어도 슬퍼 보여요." 윤태호가 그런 반응에 대해 말한다. "장그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이미 큰 슬픔이 있는 사람인데 그 색채가 얼굴에 나올 수 밖에 없다." 장그래의 웃음 이야기가 나오니 웃을 때마다 수염이 더욱 인상적이다. 수염을 언제 길렀냐고 물었더니 "아이 손 잡고 놀이터 다닐 때부터"라는 영상화된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의 회사원들이 없는 그런 평일에 아이와 밖에 나가면 보통 '노는 아빠'로 바라본다. 정말 뜬금없이 아파트 단지내에서 만난 어떤 다른 아이가 윤태호에게 그랬단다. "우리 아빠는 회사에 있어요. 우리집에는 돈이 많아요(아이의 뜻, 당신은 백수에요)" 왠지 과장같지만 윤태호는 이런 만화같은 사건으로 인해 수염을 길렀다. 다른 사람에게 '나는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오'라고 얼굴에 그려진 영상(=수염)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 "수염 기르는데도 처음엔 좀 용기가 필요하다. 정체를 수염으로 밝힐 생각으로 억지로 길렀으니까." - 쐐기를 박은 것은 허영만 선생이다. 고우영 장례식에서 만난 허영만 선생이 '수염이 어울리네'라고 웃자 수염은 정말 윤태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 화실에서, 등장 인물의 기본과 한계를 파악하고, 취재를 통해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림작업 만큼이나 중요하다 일상의 어마어마한 스토리(취재) 관리는 기본적으로 녹취와 메모에 의지한다. 취재능력은 보통 기자 못지 않다. 미생은 회사를 다룬다. 회사의 조직에 대한 개념파악을 위해 취재원과 같이 앉아서 윤태호는 마인드 맵까지 일일이 그렸다. "멍청하게만 듣고 있으면 책상앞에서 쓸 게 없다. 나를 중학생 취급해라. 부끄럽지 않고 다 물어야 한다. 현장에선 쓰는 언어가 다르다. 리스크와 크라이시스가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물어야 한다. 둘이 대체 뭐가 달라요? " 또 하나 인물 설정을 위해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무슨 고민이 있나? 허락된 한계치가 어디까지인가? 인물을 놓고 한계지점을 놓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극적인 장면이 나온다. 가령 우리가 잘 아는 만화가 허영만과 이현세는 술을 좋아하지만 취향과 한계가 분명하다. 그 둘을 부딪치게 하면 재밌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허영만 "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밤을 새며 술을 먹는것은 불가하다" 이현세 "내일 아침의 일 때문에 마음 통한 사람과의 술을 마다하면 그것은 이현세가 아니다" 이 둘이 만나 술을 마신다면 어떤 상황이 될 것인가? 역시 인물의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 자기 직급의 책임영역 어디까지인지?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과 지점은? 고민은 무엇인가? 리더십? 승진? 동일한 직급과의 비교 스트레스? 연말 기조실에서 1년의 성과를 봤을 때 떨어지지 않을까? 여기 회의에서 강하게 나갔어야 할까? 윤태호의 표현으론 이러한 모든 '멍청한 질문들'이 작품의 현실성을 강화했다. "모든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에게 반말을 찍찍합니까? "굳이 존대를 하는 상사도 있습니다" 라는 대답이 나오면 정말 좋은 것이다. 활용의 폭을 정할 수 있다. 회사마다 조직문화가 다 다르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여지와 '절대 그럴 수 없다'라는 한계를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좋은 만화'가 되기도 어렵고 '좋은 만화가'가 되기 또한 너무 어렵다. 어떤 사람을 2시간 이상 인터뷰하는 것은 대단히 피곤하다. 인터뷰 받는 사람도 피곤할 수 있다. 소재를 위해 강남역에 튀어나가 6시간 이상씩 인터뷰를 하고 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 윤태호 작가와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 대화 중간에도 윤작가는 상대를 인터뷰하듯, 혹은 대화에 스며들듯 관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좋은 만화가가 되는 과정.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좋은 만화, 좋은 만화가에 대한 윤태호의 시각을 물었다. "(좋은 만화가가 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이 지나면 재능의 수준이 아니다.매력의 문제다. 그림을 별로 못 그리거나 내용이 떨어져도 그 작품이 매력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작품이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꼼꼼한 자료조사를 하고 그렸어도 매력이 없으면 출판사나 포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잘 그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독자가 막연히 난 이 친구(작가)가 좋아 이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독자의 취향, 그러니까 만화를 읽는 내 취향을 존중해주는 작품이 정말 매력적인 것이다. " "가령 메가쇼킹의 탐구생활, 조석의 '마음의 소리'같은 작품에 그런 매력이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문화교양적인 것, 기호까지도 독자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건 작가의 취향에 대한 품격을 독자가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심히 만들었다는 작품에 매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독자의 취향을 무시한 것은 살아남기 힘들다. 특히 쟝르적 특성에 필요없는 에너지 낭비를 하며, 과도한 묘사를 하는 작품도 있는데 그런 작품은 실패다. " - 마이너 정서를 공유한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하긴 이땅의 대학 합격생과 취업 합격생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것이었다면 대다수는 마이너가 아닐까도 싶은데. "자기에게 할당된 행복이라는 게 있을 거다, 그걸 찾아야지, 남이 설정한 행복 싸이즈를 메꾸려고 찾지말자. 미생에서 말하려던 거도 그런거다. 저도 20대에는 허영만처럼 히트작가가 되어서 , 빌딩도 세우고하는 그런 꿈도 꿨다. 가능하리라고 생각을 했는데살다보니 저는 그런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정과 직장이 균형이 이뤄진 과정에서 소소한 것, 술도 마시고,사람도 만나고 하는 그런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 물론 그것을 영위하기에도 팍팍한 환경이라 많은 것을 희생하다보니 삶이 힘들다. 자기에게 할당된 행복도 실은 쉽지 않다. 여러분 산다는 건 다 힘들어요. " ○● 윤태호의 '이끼' 보러가기 ☜ ○● 윤태호의 '미생' 보러가기 ☜ ○● 윤태호의 '내부자들' 보러가기 ☜ ○● 윤태호의 미생, 10년의 준비, 인터뷰1편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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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영화제작분들께는 선물로 주는 그런 그림을 그려 준 적이 있다. 미국의 팝아트는 예술의 권위를 희롱하는 형식으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만화의 형식을 빌리기도 했지만 복제가 가능한 그런 시대의 지점을 표현한다. 저로선 "만화가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하는 입장이다. 뭐, 아니어도 좋다. 마치 내 만화에 '만화지만 좋네요'라는 댓글이 달린 것처럼 말이다."
- 요즘도 도제식의 문하생 제도가 있나?
▲ 화실에서, 등장 인물의 기본과 한계를 파악하고, 취재를 통해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림작업 만큼이나 중요하다
▲ 윤태호 작가와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 대화 중간에도 윤작가는 상대를 인터뷰하듯, 혹은 대화에 스며들듯 관찰하는 경우가 많았다.